본문 바로가기

연세소식

[역사 속 연세] 우남 이원철 박사, 되찾은 하늘에서 별을 노래하다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6-06-30

 

우남 이원철 박사, 되찾은 하늘에서 별을 노래하다

 

물리실험실의 베커 교수와 이원철(우측 세 번째), 1918

 

한여름 밤이면 하늘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 수많은 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 즈음 신촌 캠퍼스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지만, 윤동주 시인이 읊었듯 그 시절엔 하늘에 바람이 이는 날이면 별들도 저마다 시구가 되어 스쳐갔던가 보다.

 

시를 쓰던 이와는 달리 하늘과 별을 노래한 사람도 있다. 무더운 여름 체육관을 지나 뒤편 ‘과학동산’에서 측우기와 해시계를 구경하다보면 건너편 과학관 앞에서 우리를 지긋이 쳐다보는 듯한 흉상의 주인공이 바로 우남羽南 이원철(李源喆, 1896~1963) 박사다. 120년 전 근대문명에 뒤진 채 쇠퇴해가던 조선의 땅에 태어나, 90년 전 이미 식민지로 전락해버린 조국에 첫 이학박사 취득의 소식을 알려온 그는 과학의 꿈과 희망을 비추게 한 별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개인으로서도 더 할 수 없는 명예였겠으나 연세가 대학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표방했던 ‘과학건설’의 첫 성과이기도 했다.

 

 

“과학적으로 남에 뒤떨어져 온갖 쓰림과 괴로움을 맛보는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학은 과학만으로는 발전하지 못하고 일반의 생활과 조화함으로써 참으로 건전한 과학이 건설됩니다. 우리 문제의 전부가 과학은 아니겠지만 과학이 우리에게 얼마나 시급하며 얼마나 절실한가를 느끼는 우리는 다 같은 동지가 되어 끝없이 발전되어가는 살아있는 과학의 안내자가 되어야 합니다.”

- 연희전문 수리연구회 《과학》 창간호 머리말에서, 1929 -

 

 

수물과 학생들과 일본 견학, 1937

 

연희전문의 대학교육을 통해 근대 과학을 소개한 것은 물리학 박사 베커(한국명 백아덕白雅悳, A. L. Becker, 1879~1979), 화학 박사 밀러(한국명 밀의두 密義斗, E.H. Miller, 1873~1966), 천문학 박사 루퍼스(W. C. Rufus, 1876~1946)와 같은 교육 선교사들이었다. 이중 루퍼스 교수는 베커 교수의 친구였을 뿐만 아니라 언더우드 선교사의 아들인 원한경 박사 부인의 오빠이기도 했다. 음악을 전공한 그의 부인은 연희전문의 첫 악대를 만들어 교육하기도 했다.

 

루퍼스 교수는 1907년 교육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배재학당과 숭실학당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1915년 박사 학위 취득과 함께 연희전문 수물과에서 수학과 천문학 등을 강의했다. 그러나 일본의 식민지교육 정책을 비판하며 1917년 귀국하고 말았다. 한국에 있는 동안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등 조선의 천문학에 대한 연구논문을 발표했던 그는 1935년 다시 한국을 찾아 이원철 교수와 함께 조선 천문학과 관련된 유물과 유적들을 둘러보고 『고대 한국의 천문학(Korean Astronomy)』을 집필하여 발표했다. 성장기에 한학을 배웠던 이원철 교수의 도움이 적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다.

 

언더우드관 옥상의 천체망원경, 1927

 

이원철 박사는 바로 이들로부터 근대 과학교육을 받은 연희전문 수물과 제1회 입학생이었다. 1919년 졸업 직후 연희에서 시간강사로 근무다가 1922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베커와 루퍼스 교수의 모교인 알비온대학(Albion College)을 거쳐 루퍼스 선교사가 귀국해 교수로 있던 미시건대학교(Univ. of Michigan)에서 천문학으로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학위 논문에서 대상으로 삼았던 주제는 견우와 직녀의 전설로 알려져 있는 견우성이 이끄는 독수리자리의 에타별에 대한 것이었다. 7월과 8월 여름 하늘에 뜨는 이 에타별이 주기적으로 변화하며 빛난다는 것을 입증하는 작업이었지만, 당시에는 이 별을 이원철 박사가 처음 발견해 “원철성源喆星”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그만큼 이원철의 박사 취득은 한국인 모두의 자랑이었고 한국인의 이름으로 별자리를 부르는 새로운 희망을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지난 2006년 한국천문연구원과 우리 대학교의 공동 연구로 발견한 소행성을 ‘이원철(Leewonchul)’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어쩌면 이미 80년 전부터 예정된 일이었는지 모른다.

 

연희전문 교수 겸 과학관장 시절, 1935

 

이원철 박사는 학위를 취득한 직후 귀국해 연희전문 수물과의 교수로 부임했다. 수물과 과장과 과학관 관장, 체육부장 등을 역임했는데 1932년 연희전문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한서漢書 1,697책을 도서관에, 1934년에는 경대와 벼루상자, 신선로형풍로 등을 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1931년부터 1934년까지 연희동문회를 대표해 학교의 이사로도 활동한 바 있다. 그러나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과 1938년 흥업구락부 사건 등 일제의 탄압으로 해임된 그는 후생과장이라는 직원의 신분으로 복직되었으나 또 다시 해임되고 말았다. 그가 천문학 수업에 사용하기 위해 언더우드관 옥상에 설치한 6인치 천체망원경도 전쟁물자로 징발됐다.

 

해방 후 연희전문을 되찾는 데에 참여했던 이원철 박사는 중앙관상대 업무에 주력하게 되면서 연희의 교수직에 몰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모교에 대한 헌신은 멈추질 않아 1955년 동문회 회장으로 선출되고 1960년 통합된 연세동문회가 새로 출범하면서는 초대 회장을 맡았다. 법인 이사회에서의 역할도 한층 무거워져 1953년부터 1957년까지 연희대학교 이사를 맡았을 뿐 아니라 1961년부터 1963년 작고하던 때까지 연세의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해 우리 대학교는 1962년 오긍선․홍승국 교수와 함께 이원철 박사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이밖에도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자 인하 공과대학 초대 학장, YMCA 이사장 등 전후 국가재건시기 교육사회 분야에서의 공로가 두드러졌다.

 

연희전문 음악대의 창설자 루퍼스 부부, 1917

 

한편 최초의 중앙관상대 대장이라는 직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원철 박사는 해방 후 일제에 빼앗겼던 우리의 하늘을 되찾아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기상행정을 정착시켰다. 미군정청을 설득해 일제의 측후소를 접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조선의 관상감이 담당하던 가장 중요한 임무의 하나이자 국민들의 실생활에 밀접하게 관계되는 『역서曆書』를 새로 간행한 것 역시 전적으로 이원철 박사의 공로로 평가된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5.16 군사정권이 들어선 1961년까지 16년간 국립중앙관상대에 봉직하기도 했다. 1948년 기상기술원양성소를 개설해 단기간에 기술 인력을 확보했으며, 대한민국정부 국립중앙관상대와 지방측후소, 출장소도 정규 직제를 갖추게 했다. 또한 1954년국제연합한국재건단(UNKRA)의 자금을 지원받아 자기온도계, 자기습도계, 수은기압계 등 28종의 관측 장비를 도입해 현대화했으며 1959년에는 태양에너지를 관측하는 은반일사계를 설치해 매일 관측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전문화된 역량을 갖춰가면서 항공과 해상의 기상지원업무도 비로소 시작할 수 있었다. 1956년 국제기상기구(WMO)에 가입한 것도 한국의 기상행정을 국제적 수준으로 발전시켜가려는 이원철 대장의 집념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는 1961년에는 3월 23일을 ‘세계 기상일’ 기념일로 제정하여 기상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관심을 집결해내기 시작했다. 이처럼 이원철 박사가 혼신을 다해 이끌어온 국립중앙관상대가 바로 오늘날의 기상청이다.

 

연희전문 이사(아랫줄 우측 세 번째), 1932

 

재학생 때 서양교수가 풀지 못하던 문제도 단숨에 풀어내는 탁월한 수학 능력을 선보여, 이미 2학년 때에 1학년생들에게 수학을 강의했다는 ‘학생교수’의 일화가 전해오지만 그는 정규 교수가 되어서는 수학과 천문학을 강의했다. 한편 ‘민족간의 평등’을 이념으로 삼는 에스페란토어를 학생들에게 과외로 강의했다는 일화를 듣고 있노라면 과학도로서의 집념 어린 삶 너머의 또 다른 풍모를 느낄 수 있다. 새로 이름 지은 교정의 ‘원철길’에서 박사의 흉상을 만나게 되면 한마디 나눌 수 있을까? “안녕하세요? 살루통(saluton)!”

 

연희전문 졸업사진, 1919

 

연희전문에서의 강의, 1927

 

윤인구 총장과 이원철 이사장, 1961

 

은반직달일사계로 일사량을 측정하는 이원철 중앙관상대장, 1959

 

이학관(아펜젤러관) 앞 수물과 학생들과 교수들, 1938

 

제1회 세계기상일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읽는 이원철 대장, 1961.3.23.

 

창덕궁 자격루를 살피는 루퍼스 박사와 이원철 박사, 1939

 

 

(자료 및 사진 제공: 박물관, 기상청 기록관)

 

vol. 전체

연세소식 신청방법

아래 신청서를 작성 후 news@yonsei.ac.kr로 보내주세요
신청서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