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삶의 패러다임을 바꿀 컴퓨팅 혁신
양자컴퓨터의 가능성
정재호 연세사이언스파크 추진본부장 / 융합과학기술원 양자사업단장
지난 10월, 현존하는 최고의 컴퓨터로 불리며 그간 해결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문제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 IBM 퀀텀 시스템 원(Quantum System One)이 국내 최초이자 전 세계 다섯 번째로 국제캠퍼스에 도입돼 운용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우리 대학교는 국내외 최고 수준의 연구 인프라를 구축하게 되었으며, 다양한 분야의 혁신을 통해 연구 및 산업의 고도화를 이끌게 됐다. 미래 과학과 산업의 ‘게임체인저(Game Changer)’라 불리는 양자컴퓨터를 통해 양자 생태계를 이끌어 갈 연세. 그 중심에 선 정재호 연세사이언스파크(Yonsei Science Park, YSP) 추진본부장을 만났다.
미래 비전에 대한 과감한 투자
우리 대학교는 미래 연구와 산업 발전을 위해 양자컴퓨터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예측하고 2022년부터 양자컴퓨터 도입을 적극 준비해 왔다. 이 사업은 초전도체 방식의 양자컴퓨터 개발을 선도하고 있는 IBM과의 협력으로 국내 최초의 세계 최고 사양의 컴퓨터 설치로 이어졌다. 우리 대학교의 위상과 학문적 역량, 그리고 미래 혁신 기술을 개발하는 IBM과의 협력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공동의 목표 하에 추진될 수 있었다.
“IBM 컴퓨터 사업부문 총괄 대표인 제이 감베타(Jay Gambetta)와 같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양자컴퓨터가 적극 활용이 돼 학문 발전에 기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았으면 한다는 것이었죠. 전임 총장님 때 시작된 사업이지만, 어떠한 취지에서 양자컴퓨터 도입을 추진했는지 알 수 있었어요. 미래 학문과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대학의 본질적인 기능인 만큼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볼 때, 양자컴퓨터를 선제적으로 도입해 학문과 산업의 혁신을 이끄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확신한 것이죠. 사업 초기에도 양자컴퓨터가 미래 과학 기술의 혁신적인 도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많았거든요. 그만큼 가치가 큰 투자였고, 처음부터 비전을 가지고 시작한 사업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대학교는 국내 최초의 사립대학이자 수많은 ‘최초’와 ‘최고’의 성과를 기록해 왔어요. 혁신과 사고의 유연함이 큰 대학이라는 점에서 다른 대학이 아닌, ‘연세’와 IBM의 협력이 자연스럽지 않았을까요.”
슈퍼컴퓨터와 비교할 수 없는 빠르고 효율적인 양자컴퓨터
현재까지 대중에게 최고의 성능을 가진 컴퓨터라 여겨지는 것은 슈퍼컴퓨터다. 그러나 양자컴퓨터는 이를 훨씬 뛰어넘는 성능과 잠재력을 갖췄다. 컴퓨터의 등장이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것처럼, 양자컴퓨터 역시 큰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측된다. 그 이상이라 예상하는 이들도 많다.
기존 컴퓨터는 정보를 0과 1 비트 단위로 연산 처리하고 저장한다. 반면에 양자컴퓨터는 0과 1 외에도 동시에 각기 다른 연산 수행이 가능해 복잡한 계산도 빠르게 수행한다. 우리 대학교에 도입된 IBM 퀀텀 시스템 원은 127큐비트(Quantum bit, 양자컴퓨터의 기본 단위)로 2의 127승 가지의 상태를 표현하고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기존 슈퍼컴퓨터가 수만 년 걸릴 연산을 단 몇 초 만에 수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0비트 컴퓨터라 할 때, 2의 10승에 해당하는 서로 다른 값을 표현할 수 있어요. 즉 1,024개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죠. 우리는 빠르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정보 1번부터 1,024번까지 한 번씩 계산해야 끝나요. 한 번에 하나의 상태만 측정, 계산 가능하죠.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많은 데이터를 ‘동시에’ 계산하는 것이 가능해요. 10개의 상자 어딘가에 동전 하나를 넣어 놓았을 때 기존 컴퓨터는 10개 상자를 하나씩 열어보지만, 양자컴퓨터는 동시에 뒤집어 보는 것이죠. 현재 슈퍼컴퓨터가 워낙 성능이 좋아 금방 계산하는 것 같지만 127큐비트의 양자컴퓨터는 2의 127승의 상태를 동시에 계산할 수 있으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죠. 실제로 ‘네이처’지에서 검증된 것인데 슈퍼컴퓨터로 만 년 이상 걸리는 연산을 양자컴퓨터는 200초 만에 풀었어요.”
결국 슈퍼컴퓨터를 포함한 기존 컴퓨터와 양자컴퓨터의 차이점은 ‘연산의 속도와 양’이다. 사실, 이 차이는 우리 삶의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생각보다 현실의 많은 문제들이 ‘계산’을 통해 풀리는 일이 많다. 단순한 예로, 주변의 맛집을 찾는 것도 AI 기술로 데이터를 계산해 분석하는 방식이다. 그만큼 우리의 편리한 삶 이면에는 계산의 역할이 중요하다. 때문에 양자컴퓨터의 활용은 우리에게 더 큰 계산 능력을 제공하고 점점 더 필수적이며, 기술의 발전과 함께 빠르게 확대될 것이다.
다양한 산업을 혁신할 양자컴퓨터의 활용
역사에 등장하는 다양한 도구는 인류의 진보를 촉진해왔다. 양자컴퓨터 역시 현존하는, 그리고 예측되는 인류의 난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데 더욱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그러나 아직까지 ‘양자컴퓨터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가?’에는 확답할 수 있는 이가 없다. 정재호 본부장은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한다.
“사실 어떤 도구를 가지고 어떻게 활용할까, 하는 것은 ‘창의성’을 내포하고 있어요. 나이를 불문하고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우리 대학교의 누군가가 해내겠죠. 그들이 창의적인 질문을 던지면, 양자컴퓨터만 풀 수 있는 문제를 우리가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처럼 양자컴퓨터는 다양한 분야의 질문에 해답을 찾는 도구로서 활용되지만, 우리 대학교가 가장 먼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바이오 분야다. 의료, 제약 산업은 그 어느 분야보다 인류의 생존과 삶의 질에 연결되는 문제들이 많다. 더불어 국제캠퍼스가 위치한 송도는 다양한 바이오 기업들이 집적된 국가 첨단전략산업 바이오 특화 단지이기도 하다. 여기에 우리 대학교가 가진 의생명/바이오 연구 경쟁력이 더해져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대부분의 산업은 연구개발을 할수록 품질은 좋아지고 가격은 떨어지게 마련이죠. 그런데 바이오 분야에는 ‘연구개발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어요. 연구를 하면 할수록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늘어요. 최근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혈우병 치료제는 가격이 수십 억에 달해요. 한 번만 맞아도 된다 해도 말도 안되는 금액이죠. 게다가 신약 개발은 임상 3상까지 거친 후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대략 17년 정도가 걸려요. 또 5조 정도의 비용이 들어가죠. 그럼에도 1만 개 후보 중에 성공하는 것은 3개 정도에 불과해요. 그렇게 연구개발, 생산, 유통 비용이 포함돼 최종 가격이 높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양자컴퓨터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할 때, 결국 이러한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바이오 관련 산업계에서는 슈퍼컴퓨터를 사용한다.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질병의 원인이 되는 인자를 ‘타겟팅(Targeting)’하고 그것을 수많은 물질과 결합해 상호작용을 비교해 보고 조절, 합성하는 일이 수반된다. 마치 레고 블럭 수천 개 속에 불량 블럭이 있다면 하나씩 맞춰보고 찾아내는 일과 같다. 이 과정에서 슈퍼컴퓨터를 활용하면 수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양자컴퓨터는 이 과정을 가속화할 수 있다. 17년 걸릴 일이 7년으로 줄어들 수도 있는 것이다. 양자컴퓨터의 활용으로 연구개발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 인건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최첨단 의약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의사 경력을 가진 정재호 본부장은 양자컴퓨터를 활용해 그간의 난제들을 해결하고 인류가 건강한 삶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곧 과학 기술 문명의 혜택을 가장 잘 누릴 수 있는 일이자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라 확신한다.
바이오산업뿐만 아니라 양자컴퓨터는 타 산업의 혁신에도 적극 활용될 수 있다. 특히 ‘최적화’가 필요한 산업에서 그 필요성과 역할이 크다.
“양자컴퓨터는 최적화 이슈를 해결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예요. 최적화가 필요한 모든 산업에 적용 가능하죠. 물류 산업이 대표적이죠. 택배 배달 지역에 어떤 동선으로 배달하는 것이 가장 연료 소비도 낮추고 시간도 줄일 수 있을까요? 10곳이라고 해도 수백만 가지의 가능성이 나오죠. 때문에 택배뿐만 아니라 항만, 항공 등 물류의 모든 분야에서 최적화 이슈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양자컴퓨터는 금융, 에너지, 인공지능 등 다양한 산업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현재까지 국내에 양자컴퓨터가 없어 긴 대기 시간, 높은 비용을 감수하고 해외 양자컴퓨터를 사용해야 했던 기업들에게 보다 좋은 기회를 제공해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일조할 수 있다.
국내 산업계 경쟁력을 높이고 글로벌 연구 혁신에 기여
우리 대학교의 양자컴퓨터는 10월에 설치가 완료돼 재학생, 휴학생, 교직원 등 학내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 신청을 받았다. 연구진을 비롯한 학생들의 뜨거운 관심과 큰 호응이 이어져, 양자정보기술연구원은 양자컴퓨팅 서비스 교내 무료 시범 운영 기간을 11월 28일까지로 확대 운영하기로 했다. 양자컴퓨터의 사용은 학교 계정을 통해 IBM Quantum ID 생성, 승인 후 Qiskit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어느 곳에서나 접속 가능하다.
양자컴퓨터는 일차적으로 내부 연구진 및 대학원생을 비롯한 연세 구성원들이 우선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양자컴퓨터의 운용, 유지 비용 확보를 위해 타 기관의 연구활동이나 기업의 수요에 대해 차등적으로 이용료를 받을 계획이다. 타 기관 소속이더라도 우리 대학교 연구진과의 공동 연구, 협력 시에는 일정 부분 요금을 할인 받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기업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이슈가 있다면 할인된 비용으로 양자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양자컴퓨터를 활용한 국내외 공동 연구도 활발하게 추진될 계획이다. 특히 지난 10월에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주관하는 2024년도 ‘2차 산업혁신기반구축 사업’에 선정돼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나섰다. 2028년까지 진행되는 해당 사업을 통해 우리 대학교는 기업들의 양자컴퓨터를 활용한 혁신 활동을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더불어 해외 대학들과의 협약을 통해 공동 연구나 전 세계 학계에서 고민하고 있는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에도 적극 활용될 계획이다.
“내년부터 국책 사업도 적극 진행할 것이고, 최근에 영국 캠브리지대학교와도 MOU를 맺기로 했어요. MOU에는 캠브리지 연구자들이 연세의 양자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요. 캠브리지는 닐스 보어, 하이젠베르크 등 유수의 양자 역학 권위자들이 동문으로, 양자 역학의 계보를 잇고 있어요. 그런데 막상 양자컴퓨터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요. 현재 연세가 협력하는 캠브리지대학교의 신약 개발 연구소는 신약 개발과 관련한 시간, 비용 등 우리와 동일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고요. 캠브리지대학교에서 우리 대학교의 양자컴퓨터 보유 소식을 듣고 글로벌 양자 연구를 선도하기 위한 돌파구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우리 대학교의 양자컴퓨터 보유는 단순히 국내 연구, 산업 발전에서 나아가 전 세계의 기초, 응용 과학계와 산업 전반에서 주목받으며 미래를 바꿀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고 있다.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지속가능한 혁신 도구로
정재호 본부장은 양자컴퓨터 보유가 갖는 근원적인 이유에 대한 질문도 놓지 않았다. 그것은 양자컴퓨터가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쓰일 것인가와도 연결돼 있다.
“우리 대학교가 연세사이언스파크를 조성하고 양자컴퓨터를 도입하는 일이 대체 무엇을 위해 하는 일인가? 라는 질문을 듣곤 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풀어야 할 인류의 난제들은 결국 초학제적 융합이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활용해야 하죠. 양자 역학은 현재 인류 지성의 첨탑이며 단지 양자 역학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양자컴퓨터와 같이 그것을 구현하는 기술이 인류가 당면한 난제를 하나씩 풀어나가야 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바이오 분야를 시작으로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나갈 것이고요.”
많은 과학자들의 말처럼, 양자 역학에 답은 없다. 결정론이 아니라 중첩되고 얽힌 복잡한 현상들이 상호작용하는 이 원리를 한 가지 답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오히려 양자컴퓨터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지속가능한 삶의 도구로 잘 활용하기 위해, 우리 대학교는 먼저 ‘양자 문해력’을 높이는 데 힘쓸 예정이다.
“양자 문해력은 다양한 레벨의 교육을 의미합니다. 학부생에서 대학원생, 심지어 산업계까지 아우르면서요. 그것이 대학 본연의 기능인 것이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양자컴퓨터가 여러 문제를 해결하면서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모멘텀을 제시할 것입니다.”
양자컴퓨터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널리 알리는 것에서 시작해 학계와 산업계 간의 협력을 강화하고, 양자컴퓨팅 생태계 구축을 통해 양자컴퓨터를 인류의 삶 속으로 들여 미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 우리 대학교는 이러한 비전을 바탕으로 미래 기술의 게임 체인저로 양자컴퓨터의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하고 이끌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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