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의 본질적인 맛을 향한 오랜 탐구와 열정
국내 대표 치즈 장인, 조장현 셰프(기계공학 86)
많은 사람들에게 치즈는 수입해서 먹는 음식이라 여겨지며, 제대로 된 치즈는 전통적인 유럽 브랜드의 수입 치즈라는 인식이 있다. 수백 년 동안 검증된 품질의 수입 치즈가 안정적인 맛을 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도 품질 좋은 치즈로 독자적인 맛을 확보하며 미식가들과 대중을 사로잡고 있는 이가 있다. 평범한 대기업 직장인에서 치즈라는 생소한 음식으로 삶의 방향을 틀고, 우리나라의 손꼽히는 치즈 장인이자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조장현 동문이다. 그는 기원전부터 인류가 먹어온 가장 본질적인 음식인 치즈에 매료돼 깊은 탐구와 열정으로 ‘좋은 치즈’를 만들고 있다.
‘딴짓’이 가능했던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
조장현 동문의 대학 시절은 창조적 세계와의 만남이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그에게 미술 동아리 ‘화우회’는 그 실체를 느끼고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것은 평범한 직장인에서 훗날 요리사가 되는 반전, 새로운 인생의 방향성을 잡고 변화에 도전하는 데 큰 자양분이 됐다.
“크리에이티브 한 일에 대해 관심을 줄곧 가져왔던 것 같아요.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건축학을 마음속에 두기도 했죠.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일을 좋아했었고, 대학 입학 후 어떤 분야의 동아리가 나와 맞을까 고민하다, 마침 화우회을 만나게 된 거죠. 화우회에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예술가적 기질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 사람들이 만드는 감수성, 세상에 대해 예민하게 인지하고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려고 하는 그런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았죠. 좀 뻔하지 않았던 것을 추구하고 생각하려 했던 것 같아요. 그땐 그 길이 고생길인 줄 몰랐지만요. (웃음)”
그렇게 자신만의 길, ‘딴짓’에 대한 즐거움을 알아버렸던 그였지만, 졸업 후 그는 대기업 직장인의 삶을 선택했다. 26살, 졸업하자마자 화우회의 인연인 한혜선 동문(간호학 86)과 이른 결혼을 하며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전공을 살리기보다 좀 더 창의적인 분야를 진로로 모색하기도 했다. 그래서 대기업 광고 회사에 면접을 봤다.
“광고 분야는 좀 더 크리에이티브 한 쪽이잖아요. 멋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면접을 보러 갔어요. 시험장에 갔더니 저 말고는 다들 양복을 입고 왔더라고요. 어쩌면 당연한 복장이었는데 첫 면접이라 잘 몰랐던 거죠. 저는 폴라티에 재킷 정도를 걸친 복장이었어요. 그런데 면접관이 ‘옷을 왜 이렇게 입고 왔느냐’고 묻더라고요. 아차 싶었는데 면접 합격 통보를 받았어요. 개성이 있어 보였을까요? 고정관념을 탈피한 사람을 선호했던 것 같아요.”
아쉽게도 최종 합격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그에게는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는 즐거운 추억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는 전공을 살려 공장 자동화 사업을 영위하는 삼성항공을 거쳐 삼성전자에서 일했다.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 선택과 도전
삼성전자 해외수출팀에서 거래처에 제품을 판매하고 수출하는 거래처 관리 업무를 했다. 우리가 드라마 ‘미생’에서 보았던 일과 유사한 일. 얼핏 그의 성향을 비추어보면 지루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곳에서 워낙 바쁜 생활을 하기도 했고, 전 세계를 누비는 일은 그의 시야를 넓히고 늘 새로운 경험을 안겨줬기에 오히려 많은 자극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안정적이면서도 한편으론 다이내믹했던 회사 생활에 대한 회의, 인생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IMF 금융 위기다.
“97년 IMF를 겪으면서 회사 생활이 영원할 수는 없는 것이구나, 언젠가는 외부 충격으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멈출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어요. 처음으로 냉혹한 현실을 느끼게 됐죠. 추진했던 사업들이 취소되고, 예상치 못한 통폐합으로 동료, 선후배가 퇴직해야만 했던 상황들이었어요. 저는 다행히 퇴직은 피했지만 그럼에도 안정적인 직장 생활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어요.”
그에게는 좀 더 지속 가능한 업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나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기에 무엇을 잘했고 좋아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성찰과 현실의 여러 상황을 고려해 그가 선택한 길이 바로 ‘요리’다.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분야였다. 그러나 외부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내 일’ 찾기의 결론은 스스로 주체가 되어 의사결정할 수 있는 ‘자영업’이었고, 그는 제대로 된 요리 분야에서 전문적인 커리어를 쌓기 원했다. 그는 런던의 르 꼬르동 블루로 유학을 결심했다.
“저는 크리에이티브 한 일을 좋아했기 때문에 요리가 그 부분과 밀접하게 관련 있다 생각했어요. 사실 요리를 배워서 우리 가족 정도 먹여 살릴 수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큰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은 처음에는 없었죠. 그런 고민을 몇 개월 하다 가족들과 함께 유학을 간 것이죠.”
회사에서 퇴직을 종용한 것도 아닌데, 아내의 반대가 있을 법도 했다. 눈에 뻔히 보이는 고생길이다. 그런데 아내 한혜선 동문의 반응은 반전이었다.
“남편이 유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 저는 찬성이었어요. 재밌겠는데!라고 말했죠. (웃음) 정말 그랬어요. 제가 남편보다 엉뚱하기도 하고 긍정적이기도 했고, 늘 성실하고,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최선을 다하는 남편을 믿었어요. 그런 신뢰가 있었기에 별로 두렵거나 하지 않았죠.”
런던에서의 생활은 경제적인 문제로 녹록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지만 대학시절 화우회에서 만나, 친구에서 삶의 동반자로 쌓아온 단단한 믿음이 있었기에 조장현 동문과 한혜선 동문은 과감하게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있었다.
유학 생활에서 맛본 요리의 즐거움
“첫 실습 시간에 식재료를 썰어보는 연습을 하는데 손이 말을 안 듣더라고요. 손재주가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서툴렀지만 조금 하다 보니 어떤 감이 있었고 요리에 있어 기술적인 문제들은 잘할 수 있겠다 싶고 재미도 있었어요. 게다가 새로운 요리를 만들고 그것을 아름답게 플레이팅 하는 것, 미감을 갖추고 신경 써야 하는 것도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내가’ 만들어내는 ‘쾌감’이 있어서 더욱 좋았어요.”
르 꼬르동 블루 런던에서 실체로 다가온 ‘요리’는 그에게 잘 맞는 분야였다. 늦은 나이였지만 그 도전이 즐거웠고, 레스토랑에서의 현장 경험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는 미식의 중심지 중 하나인 런던의 수준 높은 다양한 레스토랑에서 실무를 경험하며 점점 더 요리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물론 유학 생활에 어려움도 많았다.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 간 길이었기에 당장 현실적인 문제들이 더 가깝게 다가왔다.
“그 시간들이 제게 큰 자산이 됐지만, 한편으로는 무언가 늘 불안하기도 했어요. 사회적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안정적인 벌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배움과 휴학을 반복하면서 학교를 마쳤어요. 한 레스토랑에서 영주권을 받을 수 있게 해줄 테니 함께 일을 하자는 제안도 받았지만, 한국에 돌아가 내 사업을 하고 싶은 열망이 컸어요.”
그렇게 그는 한국에 돌아와 준비 시간을 가진 후 2005년 첫 레스토랑을 열었다.
트렌드를 이끄는 레스토랑의 성공, 변함없는 맛을 가진 아티장 푸드에 대한 관심
서래마을에 오픈한 첫 레스토랑 <키친 플로(Kitchen Flo)>는 성공적이었다. 아시안 레스토랑 & 와인바 콘셉트로 서래마을의 외국인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뒤이어 도곡동에 <셰플로(Chef Flo)>라는 이름의 가스트로 펍 콘셉트의 레스토랑, 신사동에 <키친 플로(Kitchen Flo)> 2호점까지 오픈하며 승승장구했다. 현재는 이태원의 <치즈 플로(Cheese Flo)>만을 운영하고 있다.
<치즈플로>라는 레스토랑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치즈’를 테마로 하는 레스토랑이다. 이 레스토랑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치즈’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그는 직접 치즈를 만들고 치즈와 잘 어울리는 하몽, 살루미 등 사퀴테리(Charcuterie)도 직접 만든다. 국내에서 치즈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던 2009년, 다소 이른 시점에 도전한 일이었다.
“처음엔 사퀴테리 분야를 먼저 시작했어요. 그러다 치즈를 만들어볼까, 해서 우유를 사다 만들어봤죠. 주방이라는 것이 어쩌면 우리 일상생활에 있는 모든 식품을 다 만들 수 있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치즈는 잘 안되더라고요. 특히 국내에서는 관련된 책을 구하기도 힘들고, 정보도 없고요. 사퀴테리는 미국에 가서 전문가에게 배워 오기도 하면서 품질도 점점 좋아졌는데, 치즈는 기반도 없고 어려웠죠. 그런데 레스토랑의 트렌드는 계속 변화하잖아요. 현재 잘 되고 있지만 영원하리라는 보장이 없어요. 트렌드에 영향받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 고민해 보니, 우리나라로 치면 고추장이나 된장 같은 음식이 서양에서는 햄과 치즈라는 결론을 내렸죠. 그래서 사퀴테리도 좀 더 배워보려 했고, 치즈 분야도 좀 제대로 배워서 해보자 싶었어요.”
치즈 제조는 끊임없는 배움과 시간이 필요한 일
조장현 동문은 뉴질랜드의 ‘오버 더 문’ 치즈 스쿨로 다시 유학길에 올랐다. 최초의 한국 학생이었다. 본격적으로 만난 치즈 제조 과정은 요리라기보다는 ‘과학’에 가까웠다. 발효, 숙성이 기본이었기에 식품 미생물까지 공부를 해야만 하는 분야였고 소의 생태, 사육 환경까지 식재료에 대한 깊은 관심, 세심한 안목이 필요했다. 그렇게 치즈 제조에 대한 기본기를 다진 그는 더욱 이 분야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됐고, 한국으로 돌아와 배운 것들을 적용해 보며 직접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치즈는 가장 전통적이고 본질적인 음식이다. 그가 앞으로 100년 후에도 치즈가 살아남을 것이라 확신하는 이유다.
“치즈는 기원전부터,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훨씬 전부터 이 지구상에서 생존을 위해 가장 먼저 먹었던 음식이에요. 전기도 불도 냉장고도 없던 시기에 저장했다 먹었던 것이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외국 음식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사실 우리가 태어나서 엄마 젖을 먹고 분유, 우유를 먹잖아요. 아이들 위에 들어가서 소화가 안 되면 토하게 되고 몽글몽글하게 나오는 그것이 위 효소에 의해 만들어지는 치즈거든요. 그러니 외국의 음식이 아니라, 그저 인간이면 오래전부터 먹어왔던 것이에요. 유행에 따라 쉽게 사라질 수 없죠.”
조장현 동문이 치즈를 만들어 온 시간에는 시행착오도 많았다. 치즈가 생각과 다른 결과물로 나올 때는 애써 만든 치즈를 모두 버려야만 했다. 단번에는 이루기 어려운, 오랜 시간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 발씩 나아가는 경험이 필요한 일이었다. 오랜 기다림과 노력, 시행착오의 순간들을 견디고 내공을 쌓아온 그. 10년 이상 치즈에 매진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계속 연구하고 배워야 하는 작업이에요. 지금껏 해온 시간만큼 앞으로 더 쌓이면 더 큰 가치를 낼 수 있겠죠. 2019년에는 프랑스에 가서 치즈를 더 깊이 배웠어요. 프랑스에서는 정형화된 레시피, 프로세스를 강조하기보다는 ‘원리’를 배웠어요. 치즈를 만드는 과정에서 왜 이 과정이 필요한지 그 이유를 가르치죠. 덕분에 제가 만드는 치즈가 더 업그레이드되었다고 할까요? 그렇게 이 분야는 끊임없이 배우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해요.”
결국 그가 만드는 치즈는 다시 ‘본질’과 귀결된다. 가장 본질적인 음식이되, 가장 본질적인 원리 속에서 ‘내가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
(조장현 셰프가 직접 만든 치즈와 사퀴테리로 구성된 플레이팅 / 사진: 치즈플로 제공)
수입 치즈와의 경쟁에서 차별화된 신선 치즈로 승부를
값진 배움의 시간들이 깊어지며 조장현 동문의 치즈는 현재 많은 조명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프랑스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그의 치즈를 맛보고 맛있다고 하거나 치즈 전문가의 찬사를 받기도 한다. 치즈 수입 회사에 소속된 전문가들이 꾸준히 테이스팅 하러 오기도 한다. 특히 미슐랭 원 스타를 획득한 레스토랑, 호텔 레스토랑 등의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시켜 그곳에서 그의 치즈가 선보이고 있다. 유럽과 전혀 다른 환경의 우리나라의 식재료로 만든 치즈의 완성도에 깜짝 놀라는 이들이 많다. 그가 제대로 된 치즈를 만들고 있다는 증거다.
“한 번은 덴마크인이 레스토랑 팝업 행사를 하는데, 국내에서 생산되는 부라타 치즈를 여러 개 테이스팅 해 보았는데 제 치즈가 제일 맛있다고 평가해 준 적도 있어요. 너무나 뿌듯했어요. 그래도 노력한 보람이 있구나, 내 노력의 시간이 쌓여가면서 하나씩 발전해 가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었죠.”
조장현 동문에게 앞으로 남은 과제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일상에서 즐겨먹는 음식이 된 치즈.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오랜 세월 축적된 경험과 높은 수준의 품질을 갖춘 본고장의 치즈가 다양하게 수입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그의 치즈는 어떻게 차별화하고 발전해 나가야 할까.
“그 지점이 제게 아킬레스건이기도 해요. 굳이 해외에서 좋은 치즈가 수입되는데 굳이 여기서 만들 필요가 있을까, 또 본고장에서 만드는 만큼 더 잘 만들 수 있을까, 가격적인 경쟁력은 확보할 수 있을까, 많은 의문이 들죠. 국내용 수준의 품질은 의미가 없어지고 유럽 같은 경우 치즈의 원재료인 원유가 우리나라 가격의 1/2 수준이니 가격 경쟁력도 낫죠. 더 좋은 품질을 계속 만들어 가야 하는데 가격 원가에 한계점이 있어 걱정이죠. 하지만 그런 부분들을 다 생각하다 보면 처음부터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죠.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을 새롭게 도전하는 건 순탄한 길이 아니지만, 도전이 있어야 변화가 생기는 것이잖아요. 이미 시작을 했고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더 나아지기까지 어쨌든 계속 이 일을 하고 있어야지요.”
여러 한계들을 맞닥뜨리고 있지만, 조장현 동문이 여전히 고수하는 것은 품질. 그래서 그는 국내에서 만들어 신선하게 공급할 수 있는 신선 치즈들로 승부를 보고 있다. 대량생산되는 공장 제품이 아닌, 원유와 응고제, 유산균, 소금만을 섞어 자연 발효 과정을 거친 자연 치즈다. 파주에 해썹(HACCP) 인증을 받은 소규모 치즈 제조 시설도 운영하고 있는 조 동문은 레스토랑 치즈플로와 파주에서 숙성기간과 유통기간이 짧은 부라타, 리코타 등의 신선 치즈를 만들어 내고 있다. 덕분에 글로벌 수준의 품질 좋은 신선 치즈를 치즈플로 홈페이지, 마켓컬리와 같은 유통채널, 파인 다이닝 등에서 만날 수 있다.
2016년 직접 만들어 1년 넘게 숙성시킨 치즈를 메뉴로 선보인 이후 <치즈 플로>에서 꾸준히 그만의 시그니처 치즈를 내놓고 있다. 현재 시그니처 메뉴로 그가 꼽는 것은 ‘얼린 염소 치즈와 배’, ‘부라타 치즈’, ‘블루 치즈’ 등이 있다. 노력의 시간들이 쌓여 완성된 결실은 손님들로부터 큰 만족을 이끌어내, 손꼽히는 치즈 맛집으로 인정받고 있다. 다양한 강연 요청도, 치즈 제조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의 문의도 끊이질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치즈’란 좋은 환경에서 좋은 소, 행복한 소가 생산하는 원유로 만드는 치즈다. 그리고 시간을 들여 만드는 과정에서 각자의 노하우와 정성이 들어간 것이다. 조장현 동문 역시 그런 치즈를 지향한다. 앞으로 더 좋은 치즈를 꾸준히 만들어 가면서, 언젠가는 자신의 치즈로 세계대회에도 출전해 보고 싶은 바람이다. 물론 그전에 그가 지향하는 치즈를 만들 수 있는 원유 확보, 원하는 규모와 수준을 갖춘 제조 설비를 갖추고 싶다. 오늘도 그는 더 제대로 치즈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가르치고 싶다는 바람으로 우리나라 치즈의 한계를 넘어 미래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조장현 동문의 레스토랑 이름 끝에는 항상 ‘플로(flo)’가 붙는다. 라틴어 어원을 가진 이것은 자체로는 의미가 없지만 뒤에 어미가 오면 변화돼 다양한 뜻을 가진다. 플로리시(flourish), 플라워(flower), 플로렌시아(Florencia) 등의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어원이 가진 공통의 본질적인 의미는 풍요로움, 번성함이다. 어쩌면 끊임없이 치즈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 안에서 숙성시키며 발전해가는 치즈에 대한 그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그 때문에 그는 단순히 치즈 전문 셰프가 아니라 치즈 장인, ‘아티장(artisanale)’을 향해 나아갈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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