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다
대한민국 대표 로봇 전문가, 고영테크놀러지 고경철 전무(기계공학 78)
미래 산업은 인공지능(AI)과 로봇공학의 기술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영테크놀러지는 2002년에 설립된 IT 기업으로 인공지능 기반 검사 장비를 주축으로 한 중견 기업이다. 고광일 대표이사와 함께 창업 멤버로 기초를 다진 이가 고경철 동문(기계공학 78)이다. 2003년 세계 최초로 3D 납도포 검사기(SPI, 인쇄 품질 검사 및 인쇄 공정의 검증 제어)를 출시했고, 2006년부터 3D SPI 부문 시장 점유율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True 3D’를 사업 모토로 AI 로봇 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이룬 고영테크놀러지는 2008년 코스닥에 상장됐다. 고경철 동문은 기술고문으로 신사업 브레인 역할을 한다. 정부가 로봇 진흥을 본격화한 2000년대 초부터 정부 정책 기획에 깊이 관여해 온 그는 대한민국 대표 로봇인으로서 고영테크놀러지의 기술 기획, 전략 수립, 미래 산업 예측 등을 총괄 지휘해 왔다.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학계 및 산업계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고경철 동문을 용인에 위치한 고영테크놀러지 R&D센터에서 만났다.
한국 로봇의 대표 공학자
그는 우리 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정밀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LG전자를 거쳐, LG산전연구소 로봇연구실장을 역임하면서 산업용 로봇 개발을 총괄했다.
“LG산전연구소에서 LG종합기술원으로 옮긴 뒤에는 지능형 로봇 기획을 주도했어요. 로봇 산업이 향후 제조업용 로봇에서 서비스 로봇 중심으로 확대돼 교육, 의료, 국방 등 산업 전반에서 요긴하게 쓰일 것을 전망했죠. 눈앞에 다가온 로봇 시대를 대비해 국가 로봇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 연구 및 제안, 지능형 로봇 기획과 기술 위원으로도 활동했어요.”
고 동문은 자율 이동 로봇을 위한 경로 제어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등 로봇 관련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세계 3대 인명사전의 하나인 미국의 ‘마르퀴즈 후즈 후 인 더 월드(Marquis Who’s who in the World)’ 2010년 판과 ‘마르퀴즈 후즈 후 인 사인언스 앤 엔지니어링(Marquis Who’s who in Science and Engineering)’ 2011~2014년 판에 5년 연속 등재된 바 있다. 지난 10월 기계로봇항공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매출 1조 회사와 모두에게 유익한 로봇 시대를 견인하는 꿈
고 동문은 고영테크놀러지에서 15년간 사외이사로 활동하며 대학 강의를 겸하다가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기술고문 전무를 맡았다. 고영테크놀러지는 반도체 검사를 비롯한 산업용 기술과 정밀하고 실수가 없도록 뇌 수술을 돕는 의료용 기술, 두 부문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중이다. 750여 명의 임직원이 매출 2,500억 원을 달성했다. 창업 후 역대 대통령마다 수상한 산업계 훈장 수훈과 각종 수상을 통해 그동안 첨단 산업의 첨병으로서 얼마나 큰 성과를 이뤄 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제 꿈은 기업 가치 1조를 넘어 매출 1조의 회사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회사 규모를 키운다는 건 그만큼 회사의 안정성을 높이고 일자리 창출 효과도 커진다는 의미죠. 한국의 중소기업은 대부분 매출 1조 미만입니다. 독일은 매출 1조인 회사부터 중소기업으로 인정하죠.”
고 동문은 독일, 일본의 AI 로봇과 경쟁하며 신사업 발굴이 필요하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가 새롭게 찾은 돌파구는 의료 로봇이었다. 고영테크놀러지의 핵심 역량인 반도체 검사 로봇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인 의료 로봇을 제작하는 건 쉽지 않은 발상이었지만 고 동문은 공학자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과감하게 도전했다.
“세계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며 숨 가쁜 속도로 과학 기술이 혁신하는 현실에 발맞춰 제조 강국 대한민국의 로봇인들이 더욱 기술 혁신을 주도할 때입니다. 지금의 산업화 시대를 선대들의 노력으로 누려 왔듯 우리 후세들이 시대를 주도하는 길을 AI와 로봇으로 열어 줘야 합니다.”
로봇 산업에서 의료 산업으로 진출한 성공 사례를 만들다
우리나라 로봇 기술 혁신에 인생을 바친 고 동문이 의료 산업에 진출한 결정적 계기는 수익이 아니었다.
“저는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경영 기획에 많은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불량률 제로를 일군 로봇 검사 장비 기술력이 핵심 역량인 IT 기업에서 의료 분야 진출은 연관성이 없죠. 그러나 매출을 늘리는 회사로만 자리매김하기보다 인류에게 유익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공익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뜻을 같이한 대표님의 동의를 얻어 10년을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2020년에 지능형 정위 로봇 신경외과 가이드 시스템, 카이메로(KYMERO)를 출시했습니다.”
카이메로는 실수가 없어야 하는 정밀한 뇌 수술을 돕는 AI 로봇 의료 장비다. 현재 국내외 여러 대학 병원에서 카이메로를 사용하고 있으며, 조만간 유수의 대학 병원 신경외과 수술실에 추가로 도입될 예정이다. 독일과 일본이 주도하는 AI 로봇 의료 시스템을 한국의 고영테크놀러지가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놀랍게도 카이메로는 단순히 뇌 수술 성공의 기대치를 넘어 의대생의 진로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의대생들은 성형외과, 피부과 등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과에 지원하는 경향이 있죠. 그런데 게임을 즐기며 퀘스트를 달성하는 데 익숙한 MZ세대 의대생들은 카이메로를 사용해 어려운 신경외과 수술을 효율적이고 성공적으로 해내는 데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신경외과 지원율이 점차 늘고 있다고 합니다. 즉, 로봇 기술력이 해당 산업 종사자의 선택권을 변화시키는 일을 끌어낸 것입니다.”
하드웨어는 세계 최고인 K-기술의 한계
고 동문은 한국의 로봇 하드웨어 기술력은 세계 톱 티어(top-tier)라고 밝혔다.
“이른바 K-팝에 비견해 K-기술이라고 할 만큼 발전 속도와 품질은 글로벌에서 인정합니다. 일제 로봇과 30년 격차에서 시작했지만 현재 우리가 정상급입니다. 하드웨어 기술력에서는 전혀 밀리지 않죠.”
한국의 인공지능과 로봇이 하드웨어 위주로 발전해 온 만큼, 소프트웨어의 AI 기술력은 중국에 역전당할 정도로 뒤처져 있다. 고 동문은 이에 대해 정부의 투자와 정책 변화, 로봇 연구자들의 연구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하드웨어 기술만 앞선다고 로봇 선진화가 되거나 산업 응용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로봇 기술이 세계 일류가 되는 데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좌우의 힘찬 날갯짓으로만 비상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인재가 많아 미래가 밝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젊은 인재들이 중소기업을 외면합니다. 대기업 중심의 기술 개발에서 못 벗어나고 있죠. 소프트웨어 기술은 벤처 스타트업 중심으로 발전하는데 우리나라 기업 구조가 재편되지 않으면 구글과 애플 같은 기술 혁신 회사는 생기지 못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소프트웨어 인재가 어디로 가느냐에 의해 결정된다고 봅니다.”
소프트웨어 인재가 편중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민간 부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로봇 소프트웨어 기술 육성 정책을 보완하고, 로봇 인재들의 해외 기업 선호 마인드를 바꾸기 위한 장기 계획이 필요하죠.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교육과 산업을 전환해 국가가 나서 인력 양성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우리 소프트웨어 산업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해야만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가 이뤄져야 20~30년 뒤 대한민국을 밝게 전망할 수 있을 겁니다.”
로봇공학자가 바라보는 미래
고경철 동문은 로봇 기술에서 가장 성과를 내고 싶은 부분으로 3대 난제 해결을 꼽았다.
“로봇 기술에는 3대 난제가 있습니다. 물체 인식 기술(사물을 보고 파악하는 능력), 위치 인식 기술(어디 가서 무엇을 하게 할 때 ‘어디’에 해당) 그리고 핸들링 기술(물체 조작 기술로 정교한 동작으로 인간을 보조)입니다. 이 3대 난제는 AI 기술을 접목해야만 풀 수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모든 로봇공학자가 3대 난제 해결을 목표로 삼고 있죠.”
SF 영화 같은 이야기지만 머지않은 미래에는 인간처럼 로봇도 스스로 이동하고 관찰하고 사물을 파악해 학습하는 고도의 기술을 갖출 것이다. 고 동문은 무작정 두려워하고 거부할 필요는 없지만 공존하는 방법에 대해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50년의 기술 발전 속도라면 로봇이 인간 수준에 근접해 인격을 갖출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계 문명으로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에 기반해 기계 문명을 거부해야 할까요? 과거에 자동차를 막고 말만 몰자는 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문명의 이기를 취하면서 더욱 인간다운 삶, 여가를 누리는 삶을 개척해 왔죠. 지금 구글이 새로운 AI 기술을 발견할 때마다 네이처지에 공개하는 것은, 기술을 독점하며 일어나는 사태를 지양하고 인류 전체에게 유익을 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우리는 문명의 흐름에서 모두를 위한 공공선을 찾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 것입니다.”
세상을 향한 첫 관문, 연세
고 동문은 대학교수와 회사 기술고문 역할 둘 다 즐겁다고 한다.
“기업인은 과거의 노력에 대한 결과물이고, 학생들을 만나는 일은 그들에게 앞으로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무기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교육은 기술 경쟁 후방에서 미래 산업 전사를 육성하는 일이죠.”
고 동문도 대학 3학년에 접한 <로봇공학의 이해>라는 수업으로 로봇공학이 생소하던 시대에 로봇공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고 동문이 존경하는 롤 모델 또한 우리 대학교에서 40여 년간 재직한 로봇공학자 박영필 교수다. 우리 대학교에서 시작된 로봇공학자의 길은 우리나라 로봇공학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로봇공학의 대부라고 불리는 그는 로봇을 쉽게 풀어서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를 위해 후배 공학자들 양성에도 힘을 쏟는 고경철 동문이다.
“인공지능의 핵심 기술을 공부해 보니 수학과 물리가 꼭 필요합니다. 기초 학문을 등한시하지 않고 기반을 잘 닦으면 좋겠습니다. 후배들이 과학을 멀리하지 않고 흥미롭게 여기며, 미래를 준비하는 학문으로 여길 수 있길 바랍니다.”
그에게 우리 대학교는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연세는 제게 젊음의 고향입니다. 제 젊은 시절, 세상을 여는 첫 관문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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