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건축과 패션의 길을 걷다
탑 시니어 모델로 변신한 건설 업계 베테랑, 박윤섭 건축가/시니어 모델(건축공학 79)
런웨이를 활보하는 모델 중, 그 누구보다 깊은 매력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시니어 모델. 젊은 에너지만이 패션의 전부가 아니라는 듯, 시니어 모델들은 여유 있는 눈빛과 특유의 연륜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박윤섭 동문(건축공학 79)은 시니어 모델이 주목받는 시대를 연 장본인으로, 런웨이뿐만 아니라 잡지,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건축설계사로서 20년 넘게 일하며 대기업 임원까지 역임하고, 회사를 떠나 모델의 길에 들어선 박윤섭 동문을 만나 은퇴 후 새롭게 시작한 제2의 인생, 다이내믹한 시니어 모델의 삶에 대해 들어 봤다.
격동의 시대 속에서 찾은 건축가의 꿈
1979년에 우리 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입학한 박윤섭 동문은 캠퍼스 생활을 온전히 누리지 못해 아쉬웠다고 회고한다. 재학 중 정권 교체를 위한 군사 쿠데타와 학생 시위로 인해 전국 휴교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입학한 첫해까지는 학교에 다닐 수 있었어요. 종합관에서 교양만 듣는 시기였죠. 그런데 전공 수업이 시작되는 2학년에 전국 휴교령이 내려졌어요. 교문은 닫히고 모든 수업과 과제가 리포트로 대체됐어요. 머리를 기르면 경찰에게 잘리고, 도망 다녀야 하는 무서운 시대였습니다.”
학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그는 3학년 때부터 건축의 매력에 푹 빠졌다. 전국 규모 대회인 건축대전에서 입선과 특선을 할 만큼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전공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는 거의 매일 밤을 새웠어요. 설계 수업에서는 ‘올 A’를 놓친 적이 없을 만큼 재미를 느꼈습니다. 건축대전에 나갔을 당시에는 팀으로 나간 친구들과 홍대 근처에서 방을 얻어서 같이 먹고 자면서 작품을 만들었죠.”
저학년 때 느꼈던 아쉬움과 별개로, 박윤섭 동문은 연고전 등 대학 시절을 회상하며 연세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였다.
“80년대에는 지금보다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컸어요. 연고전을 하면 애교심이 딱 생겼죠. 연고전 기간에 명동에 가면 경찰들이 다 정리해 주고, 가게 주인분들이 맥주를 그냥 주시기도 했던 기억이 나요. 사회에 나오니 ‘고연전’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던데,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연세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용평리조트 ‘버치힐’과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호텔’까지, 베테랑 건축설계사의 길
유망한 건축학도였던 박윤섭 동문은 1983년 졸업 후 김수근 건축가가 이끌던 공간건축연구소에 합류했다. 1년 동안 근무하며 실전 경험을 쌓은 후 우리 대학교에서 건축설계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UCLA에서 2년 만에 건축학 석사를 취득하면서 순탄한 미래가 그를 기다리는 듯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시작했던 사업이 실패하면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미국에서 헬기를 타고 제가 가진 땅을 볼 정도로 성공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쫄딱 망해서 한국에 왔죠.”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자부심이었던 건축설계에 도전했고, 1995년 입사한 쌍용건설에서 굵직한 사업들을 맡아 추진하며 건축주들이 믿고 맡기는 건축설계사가 됐다. 이후 20년간 그는 건축계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구축했다.
“20번 넘게 설계를 고쳐서 완성했던 용평리조트의 ‘버치힐’ 콘도가 기억에 남아요.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배우 배용준 씨가 설계한 것으로 등장해서 중국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방문했었죠.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샌즈’ 호텔도 큰 자랑이에요. 오래 사숙했던 모쉐 사프디(Moshe Safdie)라는 건축가가 설계한 작품인데, 완공 후 그가 직접 저에게 ‘내가 설계했지만 이대로 지으리라고 상상을 못 해서 정말 놀랐다’고 말했어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결국 실제로 만들어 냈다는 최고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시니어 모델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다
여러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건설회사의 임원으로 맞은 정년은 영광스러웠지만 동시에 당황스러웠다.
“먼저 퇴직한 선배가 그랬죠. 퇴직 후 3년만 지나면 대기업 임원 티를 완전히 벗는다고요. 회사에 있을 때는 제가 지시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니 내가 곧 회사라고 생각했는데, 나와 보니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주말 없이 일하던 때와 달리 시간도 정말 많아졌어요.”
이전의 커리어를 이어가고자 후배와 건축사사무소를 차린 뒤에도, 전과 같지 않은 일상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렇게 회사 밖에서의 정체성을 찾지 못했던 시기, 박윤섭 동문은 우연히 시니어 모델의 세계를 만났다.
“2019년 봄, TV에서 ‘김칠두’라는 시니어 모델을 보게 됐는데 너무 멋있어 보여서 문득 저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9년간 순대국밥집을 운영한 분이라 전혀 접점이 없었지만, 무작정 만나러 갔어요. 신기하게도 첫날 이야기하고 사진 찍으면서 바로 친해졌어요. 저보고 신체 조건이 좋으니 모델을 해도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죠.”
용기 있게 시작했지만, 가족과 친구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지금까지 쌓아 온 사회적 명예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때에, 전혀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그가 동력으로 삼은 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연예인이나 가수, 모델이라는 직업의 가치가 평가절하됐어요. 알고 지내던 주변 임원들은 저의 모델 도전을 탐탁지 않게 여겼죠. 저도 물론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지만 조금은 더 자유로운 영혼이에요. 왠지 모를 자신감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실제로 모델 일을 해 보니 ‘내가 잘났다’는 그 자신감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느껴요.”
광복 78주년 기념 독립문 패션쇼, 서울패션위크 2023 F/W 므아므 컬렉션
(사진 제공 : 박윤섭 동문)
주변의 걱정과 달리, 시니어 모델 아카데미에서의 훈련을 거쳐 현장으로 투입된 박윤섭 동문은 활동을 시작한 지 1~2년 만에 유수의 패션쇼와 뮤직비디오, 광고에 등장하며 대중에게 존재를 알렸다. 모델로서의 성취가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오래 잠재돼 있던 콤플렉스가 해소된 기분이에요. 사실 저는 미대 진학을 꿈꿨는데 당시 군인이셨던 아버지가 엄격하셔서 엄두를 못 냈고, 두 형님은 저보다 훨씬 공부를 잘했어요. 심지어 아버지께서는 군에서 퇴역하신 후 하버드 MBA에서 학위를 따고 오셨죠. 그래서인지 오랜 공부를 견디고 건설 업계에 자리를 잡은 후에도 어떤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의 인생은 그 인생대로 존중하고, 저는 제 분야에서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됐어요.”
가장 돋보일 수 있는 업계를 찾아 재능을 꽃피우게 된 그는 최근 모델 에이전시와 전속 계약을 체결해 활발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요즘은 다양한 매체에 나오는 광고를 찍을 때 즐거워요. 작년에는 손흥민 선수와 함께한 작업이 TV에 많이 등장했어요. 조만간 삼성전자와 찍은 의료용 로봇 광고도 70여 개국에 공개될 예정이에요. 시니어 모델이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자리 잡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현재에 충실하게, 열정을 다하는 삶
완전히 새로운 행보를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박윤섭 동문은 ‘제2의 삶’이 아니라 치열한 탐구와 모험으로 개척해 온 이전의 삶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지금도 ‘건축가 박윤섭’으로 원대한 꿈을 꾸는 게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건축에는 직접적인 책임이 따라요. 건물을 잘못 세우면 사람이 많이 죽을 수도 있죠. 또 자본이 많이 투입되기에 건축가의 능력이 따라 주지 않으면 큰 손해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설계가 정말 중요해요. 인류 역사상 아직 없었지만, 그럼에도 저는 건축주가 ‘완벽하게’ 만족하는 건물을 짓는 건축가가 되기를 꿈꿉니다.”
건축가와 모델의 삶을 동시에 사는 박윤섭 동문은 다양한 곳에서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있다. 후배 시니어 모델 대상 강의, 해병대 강연,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등 여러 강의에서 그가 언제나 강조하는 건 ‘현재를 충만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말은 반은 틀리고 반은 맞아요. 일희일비하지 않고 인생을 길게 보라는 뜻이죠. 하지만 살다 보면 100m 달리기로 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에요. 지금까지 수많은 시험과 승진을 위한 회사 생활, 임원 평가를 거치면서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모릅니다.”
이처럼 시간의 유한함을 알기에, 그는 자유로운 대학 시절을 보내는 연세의 후배들이 모든 공부에 자신을 활짝 열어 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교양을 많이 들을 거예요. 대학원 다닐 때부터 건축가는 스페셜리스트보다 제너럴리스트가 돼야 한다고 들었는데 현장에 나가 보니 정말 그래요. 건축주가 일을 주면 절반은 배선, 설비, 구조 등을 잘 아는 다른 분야의 전문가에게 부탁해야 해요. ‘누구에게 어떤 일을 맡겨야 하는지’ 알아야 하는 거죠. 그래서 건축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수업처럼 보이지 않더라도 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그런 지식이 차곡차곡 쌓여서 나중에 빛을 발하거든요. 그뿐 아니라 여러 수업을 통해 또래와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다른 사람과 내 생각을 비교해 보고, 내가 내용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기회예요. 그때가 아니면 돌아오지 않을 기회죠.”
쏜살같이 지나가는 삶 속에서 순간에 충실해지라는 이야기와 더불어, 그는 필연적으로 주어질 시련과 역경에도 용기를 내어 자기 속도대로 나아가라는 조언을 건넸다. 인생을 열정으로 가득 채우고, 안전한 길보다 새로운 길을 걷고 싶은 이들에게 표지판이 돼 주는 박윤섭 동문. 그가 걸어갈 뜨거운 내일을 기대해 본다.
“달리다가 넘어졌을 때, 불안해하지 말고 잠시 쉬었다가 또 달렸으면 좋겠어요. 오버페이스하지 않고 자신의 최선을 다하면서요. 다시 일어나는 것도, 새로 시작하는 것도 두렵겠지만, 결정한 후에는 ‘띵커(Thinker)’보다 ‘두어(Doer)’가 돼서 열정을 다하면 돼요. 저는 그렇게 하루하루의 달리기가 쌓이면, 10년 뒤에 또 무엇인가가 돼 있을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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