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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역사 속 연세] 한국 의학교육의 선구자 에비슨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6-08-31

한국 의학교육의 선구자 에비슨

 

연희와 세브란스 교장 역임 한국 고등교육 발전에 기여

서거 60주년 맞아 특별 전시회 열어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하는 에비슨(우측에서 두번째, 1904)

 

신촌캠퍼스 정문을 들어서면 백주년기념관과 암센터를 잇는 작은 공원에비슨 가든 있다. 이밖에도 세브란스 본관 앞마당에 위치한 에비슨 동상과 에비슨의생명 연구센터(ABMRC)를비롯해 교내 곳곳에서 선교사 에비슨을 기리기 위한 흔적을 있다.

 

올해로 서거 60주년을 맞은 올리버 에비슨(Oliver R. Avison, 1860~1956) 1893 미국 북장로회의 의료 선교사로 내한해 1935 귀국할 때까지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의 교장을 역임하며 반평생을 우리나라 고등교육과 한국의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한국인을 위한 의학교육 정립

한국 최초의 현대식 병원 세브란스 건립

 

제중원 의학교과서(1905~1910년 사이에 제작)

 

제1회 졸업생과 허스트

 

세브란스 병원(1904)

 

1893 7, 당시 캐나다 토론토에서 토론토 시장의 주치의로 활동하던 에비슨은한국인 의사를 양성하겠다 신념으로 선교사를 자청했다.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당시 한국 최초의 서양식병원이었던 제중원을 이끌며 의학생인 김필순, 홍석후, 홍종은 등의 도움으로 거의 과목의 의학교과서를 우리말로 번역 출판하는 국내 의학 교육에 매진했다.

 

오늘날의 세브란스 병원을 건립한 주역 역시 에비슨이었다. 그는 1899 안식년을가지며 뉴욕에서 개최된 해외 선교 회의에서한국에서 활동 중인 선교단체의 의사들이 모여 함께 일할 있는 하나의 병원을 만든다면 훨씬 효율적으로 선교 활동이 이뤄질 있을 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당시 그의 강의를 들은 세브란스(Louis H. Severance) 에비슨이 구상한 병원 건립을 위해 1 달러를 기증했고, 1904 9 23 마침내 한국 최초의 현대식 병원세브란스 병원 개원했다. 에비슨은한국인을 빛으로 인도한다 의미로 백내장 환자를 선택해 같은 10 4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집도했다.

 

세브란스 병원에 허스트(Jessie W.Hirst) 합류하면서 에비슨은 의학 교육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1908 6 3 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된다. 대한제국 정부는 이들에게 한국 최초의 의사 면허인 의술 개업 인허장 1~7번을 부여했다. 이후 졸업생들은 모교에 남아 후학을 양성하며 일제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서양 의학이 한국에 뿌리 내려 자생할 있는 토대를 쌓았다.

 

언더우드관의 정초석을 놓는 에비슨(1921)

 

한편, 에비슨은 1915 3월에 개교한 연희전문학교에서 교장이었던 언더우드와 함께 부교장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1916 10 언더우드가 타계하면서 그는 1934 9월까지 20년동안 교장으로서 연희전문학교를 이끌었다. 1920 스팀슨관을 준공해 본관으로 삼고 1922년에는 기숙사인 핀슨관을 준공했다. 언더우드 동상의 건립(1928) 노천극장의 준공(1933) 에비슨의 지휘 아래 이뤄졌다. 외형적인 정비와 더불어 그는 다음과 같이 연희전문학교의 교육방침도 정립했다.

 

본교는 기독교주의 하에 동서고근東西古近 사상의 화충和衷으로 문학, 신학, 상업학, 수학, 물리학 화학에 관한 전문교육을 실시함에 있어, 종교적 정신을 발양하여 인격의 도야를 꾀하고 인격의 도야로부터 독실한 학구적 성취를 도모하되, 학문에 정통함과 더불어 실용적인 능력을 함께 갖춘 인재를 배출하는 것을 교육 방침으로 삼는다."

 

이러한 정신에 따라 유억겸, 백낙준, 이춘호, 이원철, 정인보, 이순탁, 백남운, 최현배, 이관용, 조병옥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은 한국인 학자들이 교수로 초빙됐다.

 

사회 개혁과 민족정신 고취에 크게 기여

 

연희전문 본관(스팀슨관) 앞의 에비슨 교장 부부

 

6천명을 수용할 수 있던노천극장(1933)

 

선교사로서 반평생을 한국에서 헌신했던 에비슨의 행적은 단순한 기독교 전도가 아닌 우리나라의 근대적 개혁을 이끄는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통해 한국 젊은이들의 계몽에 앞장선 것은 물론 1893 백정 박성춘을 치료해 것을 계기로 당대의 신분을 철폐하는 동참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도산 안창호가 세브란스병원에서 비밀 회합을 갖기도 했으며 김필순, 박서양, 이태준 세브란스 졸업생들은 조국을 되찾기 위해 만주, 몽골 등지로 망명해 독립운동을펼쳤다. 에비슨은 은퇴 후에도 서재필, 이승만과 함께 기독교인 친한회(The Christian Friends of Korea) 조직해 한국의 독립을 위해 적극 나섰다.

 

연세의료원은 에비슨 박사의 서거 60주년을 기념하고자 에비슨의 일대기를 살펴볼 있는 특별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는 세브란스 병원 본관 3 아트 스페이스에서 오는 9 30일까지이어질 예정이다. 9 캠퍼스를 방문한다면 전시회에 들러 오늘날의 연세대학교와 의료원의 토대를 쌓은 에비슨의 발자취를 좇으며 연세의 역사를 반추해보는 어떨까.

 

(자료 사진 제공: 박물관, 동은의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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