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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연세의 추억] 봄이 오는 캠퍼스, 잔디 위에: 최유진(국어국문 86)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6-03-30

봄이 오는 캠퍼스, 잔디 위에

 

최유진(국어국문 86)

 

 

 

님이 노래하라 명하시면, 내 마음은 자부심으로 터질 듯합니다. 터질 듯한 마음으로 님의 얼굴을 올려다보노라면, 내 눈에는 눈물이 고입니다.

 

내 삶의 거칠고 그슬리는 그 모든 것들이 녹아 흘러 한 가락의 감미로운 화음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님을 향한 내 흠모의 마음이 날개를 펼칩니다. 기쁜 마음으로 바다 위를 날아오르는 한 마리 새처럼.

 

나는 님이 내 노래에 즐거워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다만 노래에 의지해서 님의 앞에 다가설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내 노래의 날개를 한껏 펼쳐 그 끝으로 님의 발에, 감히 이르고자 갈망할 수도 없었던 님의 발에 가 닿습니다.

 

노래하는 기쁨에 취해, 나는 나 자신을 잊고 나의 주인인 님을 친구라 부르기도 합니다.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배울 때면 귀동냥으로 듣곤 하던 인도 시인 타고르의 대표작 ‘기탄잘리’. 스무 살의 어느 봄날 얇은 문고판으로 나온 <기탄잘리>를 사들고 캠퍼스 잔디밭에 주저앉아 한구절 한구절을 향기로운 커피 마시듯 머금고 음미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이제 막 날갯짓을 하려 하는 젊은 가슴에 타고르의 시구들은 얼마나 황홀한 감격이었던지.

 

아름다운 구절에 취한 나머지, 곁에 있던 친구에게 큰소리로 시를 읽어주었다. 비록 남자였지만 말도 잘 통하고 웃음도 감성도 공유할 수 있다고 여긴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였으므로.

 

그런데 몇 구절 읽어주지도 않았는데 그 친구 얼굴은 점점 굳어져 갔다. 별 생각 없이 그때는 그 시에 공감이 잘 안되는가 보다, 그렇게만 생각했다.

 

‘남자들이란! 도무지 시를 모른다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시건방진 생각이었던 듯하다.

 

새 학기가 되어 그 친구가 입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인 내게 한 마디 말도 없이 군대에 갔다는 얘기에 적지 않게 서운했다. 그 소식을 전해 주던 친구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근데 너....걔한테 고백했냐?”

“응? 무슨 고백?”

“네가 언젠가 시에 빗대어 살짝 네 마음을 드러냈다던데... 자기는 그런 맘 없는데 네가 그러니까 좀 당황했나 보던데... 너 걔 좋아한 거 아니었어?”

 

아니, 이 무슨 벼멸구 피죽 쑤는 소리란 말인가. ‘기탄잘리’의 감동을 함께 나누려 했던 내 시도가 녀석을 겁 먹고 달아나게 만들다니! 내가 사랑의 시에 마음을 얹어 넌지시 고백을 할만한 대담한 여자라 생각한 것일까? 날 몰라도 너무 몰랐군. 설령 그렇게 오해를 했다 쳐도, 자길 짝사랑한다 생각되는 이성친구에게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은 줘야 매너남 아니겠는가?

 

‘이보게, 친구, 자넨 날 사랑할 자격이 없었던 거야! 하하.’

 

25년 동안 한 번도 그를 보지 못했다. 언젠가 한번 만나면 ‘기탄잘리’를 기억하냐고 물어보고 싶다.

 

학창 시절, 연세 캠퍼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어디냐는 물음에 숨이 턱에 닿게 달려 올라가던 인문관이나 종합관도, 공부보다 서클활동에 더 열을 올렸던 날라리 학생이 온종일 죽치고 있던 서클룸도, 짝사랑의 기억이 아프게 배어 있던 청송대도 아니고 밋밋하게만 보였던 잔디밭이 맨 처음 떠오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두컴컴한 강의실을 벗어나 따뜻하고 환한 잔디밭에 둘러앉아 시 수업을 듣던 친구들. 시인이 되고 싶고 소설가가 되고 싶다던 꿈을 이룬 친구들도 있지만 꿈을 접고, 또는 그 꿈을 잊고 살아가는 친구들의 가슴에도 봄마다 만발하던 용재관 앞 진달래 덤불은 해마다 화사하게 피어나리라.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이 나를 청춘의 꿈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데려가고 있지만 무구하고 영롱한 시절의 기억은 세파에 지치고 찌든 나를 젊은 날의 그 마음, 막 돋아난 새순 같은 마음으로 불러들이고는 하는 인생의 배려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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