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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故 오일홍 교수, 탄신 100주년을 기리다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5-11-13

故 오일홍 교수, 탄신 100주년을 기리다

 

 

故 오일홍 명예교수의 탄신 100주년 기념 모임이 지난 11월 4일 알렌관 무악홀에서 열렸다. 경제사학계의 원로 오 교수는 황해도 송화 출신으로 일본 와세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952년부터 1981년까지 우리 대학교수로 재직하며 상경대학장과 경영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0년 1월 3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이후 그의 유족들은 ‘오일홍 장학 재단’을 설립해 경제학부를 비롯한 다양한 고등교육기관의 학생들을 지원하며 인재 발굴에 기여하고 있다. 2014년 기준 오일홍 재단의 연간 장학금 지급액은 약 8천7백만 원에 이른다.

 

우리 대학 경제사학의 전통 일궈

 

이번 탄신 100주년 행사에서 호서대 서정익 교수는 오 교수의 학문세계를 조망했다. 서 교수에 따르면 오 교수는 일제 강점기 와세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실증사학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960년 오 교수가 발간한 「경제사」 (4인 공저)는 이러한 학풍이 잘 드러난 저서인데, 그는 주로 국제통화 및 국제통화제도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금본위제, 전간기(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의 금본위제 붕괴 및 관리통화제도 도입을 중점적으로 연구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여러 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 연희전문 시절부터 이어진 연세대학교 경제사학의 전통을 이어가는 중요한 학자였다.

 

오일홍 교수의 연구는 경제사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당시 현실 경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의견을 다양한 형태로 피력했다. 외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 불균등한 소득 분배, 불균형적인 산업 발전 등을 비판했으며 기업의 지나친 이윤 추구로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어 당시 오 교수의 식견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아버지’ 같은 따뜻함으로 후학 양성에 힘써

 

그는 강의실에서도 학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언제나 학생들의 질문에 성심껏 대답해주었으며, 열린 마음으로 학생들과 토론하기를 즐겼다. 때로는 강의에 열중한 나머지 시간이 지난 줄도 모르고 강의를 계속 이어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유학을 간 제자들의 소식에도 귀를 기울였고, 이들이 좋은 성과를 거두면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고 한다.

 

이처럼 오 교수는 제자들의 생활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정창영 전 총장은 오 교수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 우리 대학교에 부임해 교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학문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영역에서도 스승의 따뜻함을 베풀었다고 회고한다. 오 교수가 당시 학생들에게 마치 부모님과 같은 존재였고, 이러한 마음 씀씀이는 당시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던 후학들에게도 큰 힘이 되었을 것이라고.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의 여파로 당시 우리나라의 대학 교육은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후학 양성과 학문의 연구에 매진했던, 나아가 사후에도 후학들에게 계속 도움을 주고자 했던 연세인 故 오일홍 교수를 잠시라도 기억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본 선생님은 동서고금의 핵심가치에 지극히 충실한 분이다. 정직, 성실, 근면, 검약, 신의를 철저하게 지키셨다. 언행일치와 진정성을 갖춘 분이셨다. 인류가 존속하는 한 불변의 핵심 덕목을 실행하는데 추호도 소홀함이 없으셨다. 선생님은 내가 살 집도 일주일 동안을 샅샅이 찾아서 마련해주셨다. 나는 선생님처럼 제자를 극진하게 사랑할 수가 없다. 나에게는 부모 같은 분이셨다. 직장도 주시고 집도 주시고 무한한 사랑도 베풀어 주셨으나 나는 선생님께 아무 것도 해드린 것 없이 걱정만 끼쳐드려서 송구스럽기만 하다.

 

(중략)

 

선생님은 역사학자로서 엄격한 책임을 수반하는 자유인을 목표로 삼으셨다. 진리와 자유는 평생을 두고 쫓으신 목표였다. 진리를 터득하여 자유인이 되려는 노력을 쉼 없이 계속하셨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이 평생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였다.

 

일본과 일본인은 일제하에서 대학을 다니고 식민지 생활을 경험하신 분으로 중요한 주체였다. 일본과 일본인에게 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철두철미하셨다. 다시는 우리나라가 식민지 노예 생활을 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생각이 투철하셨다.

 

대학생은 성인이며 성숙한 자유인을 목표로 삼아야만 한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이 그 기준에서 떨어지는 행동을 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꾸지람을 하셨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져서는 안된다는 것이 선생님의 투철한 역사의식이었다.

 

평생을 인류 불변의 핵심가치에 충실하려고 무던한 애를 쓰시고, 분단의 고통을 끌어안고 사시며, 진리를 터득해서 자유인이 되려고 노력하고, 다시는 일제 식민지와 같은 종의 멍에를 지는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지닌 선생님을 만나서 수많은 가르침을 받은 것은 내게는 큰 행운이고 축복이었다.

 

후학들이 선생님의 높은 뜻을 계승하여 그의 진리와 자유정신이 충만한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선생님이 참으로 그립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부디 사모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시옵소서.

 

- 정창영 전 총장의 오일홍 교수 회고록 중에서 -

 

vol. 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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